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세인 1세 (문단 편집) == 일화 == * [[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|인디아나 존스 3편]] 촬영을 적극 후원하면서 촬영지인 [[페트라]]를 관광단지로 키우는데 크게 공헌했다. * 1980년대 중후반 [[니콜라에 차우셰스쿠]]가 요르단을 순방했을 때 그의 아내 [[엘레나 차우셰스쿠|엘레나]]가 뜬금포로 후세인 1세에게 "요트 내놔" 드립을 시전했다. 그런데 하필 그 요트가 이미 딸에게 준 선물인지라 후세인은 엘레나를 잘 달래서 그 요트와 비슷하게 생긴 다른 요트를 선물로 줬다. 후세인 1세는 친히 그 요트에 '''우정'''이라고 이름을 지어줬건만 엘레나는 그걸 갖고 루마니아로 귀국하자마자 그 요트의 이름을 '''지도자'''로 바꿔버렸다. * 그는 [[일부다처제]]인 [[이슬람]] 국가에선 특이하게도 4명의 아내를 둔 게 아니라 아내를 딱 하나씩 두었다. 첫번째와 두번째 결혼[* 현재 국왕인 [[압둘라 2세]]가 영국계인 두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.]은 이혼으로 끝났고, 3번째 결혼상대인 알리아 왕비는 [[1977년]] 헬기추락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. 이후 [[1978년]] 시리아-레바논계 미국인인 리사 할라비 (훗날 누르 알 후세인 왕비로 개명)와 4번째로 결혼했다. 아랍에선 이런 왕이 희귀한 편이라고 한다.[* 참고로 사우디아라비아만 해도 20번 넘게 결혼한 왕도 있다! 아내를 4명까지만 두기에 그 수를 넘으면 이전 여자는 이혼하고서 새로 결혼한다든지 그랬다고 한다. 하지만 서류상으로만 이혼할 뿐 대우는 이혼 전과 동일하며 같이 데리고 살며 이혼한 아내는 호적상의 아내와 대우가 동일하다.] 게다가 그는 일부다처제를 금지시키고 여성들의 사회활동도 허가하는 등 꽤나 개방적인 세속적 정책을 취하여 여성 정치인과, 교수, 성직자까지 나왔다. 인권 등의 측면에 있어 아랍에서는 보기 드문 개혁적인 국왕. 게다가 1952년엔 [[입헌군주제]]를 선포해 현재 요르단은 입헌군주제 국가다. 그래서인지 아랍에 가서 여러 나라 군주들을 대놓고 씹고 욕하는 배짱을 보이던 이탈리아 여기자 [[오리아나 팔라치]]가 유일하게 멋진 군주라고 칭했다. * [[1983년]] [[대한민국]]에 [[전두환]] 당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한 적이 있었다.[[https://youtu.be/MXIZ66qf-jU|당시 대한뉴스]] 이때 후세인 1세를 정말로 성대하게 맞아들이고 방송국에서도 대대적으로 중계를 했는데, [[이계진]] 저 [[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, 딸꾹!]] 책에 따르면 이게 알고보니 얼마 뒤의 [[로널드 레이건]] 당시 [[미국 대통령]] 방한을 대비한 연습중계였다고. 해당 서적에는 J국의 국왕이라고 나왔지만 이 시기에 한국을 방한한 '국왕'이 이 분밖에 안 계신다. [[파일:attachment/요르단 디나르/jordan024.jpg]] * 현 [[요르단 디나르|요르단 20디나르]] 지폐의 인물이다. [[분류:1935년 출생]] [[분류:1999년 사망]] [[분류:암만 출신 인물]] [[분류:요르단 국왕]] [[분류:화폐의 인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